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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변요한의 데뷔작 '토요근무(2011)'
    Film/pick film 2020. 10. 16. 13:27

    배우 변요한의 데뷔작 '토요근무(2011)'


    WARING
    이 글은 본 영화의 구체적인 줄거리와
    리뷰어의 개인적인 분석까지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기본정보
    감독 : 구은지
    출연 : 변요한, 박서연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7분
    수상내역 : 201 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우수상)

    이 영화는 배우 변요한의 찐팬? 이라면 한 번쯤 찾아봤을 영화이다. 지금은 유명 배우 반열에 오른 변요한이지만 지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풋풋한 신인배우 변요한을 만나볼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의 데뷔작으로 알려진 '토요근무(2011)'는 무명 배우지만 어설프지 않으며, 프로 배우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다. 미생이란 드라마를 통해 처음 변요한이란 배우를 보고 느꼈던 친숙함과 눈길을 끄는 매력에 충분한 당위성을 부여해 주는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장마전선까지 겹치면서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오후에는 비 소식이 있다는 라디오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영화는 시작된다. 인터넷 설치 기사인 도연은 남들은 쉬는 토요일임에도 일을 하기 위해 고객 명부를 체크한다. 유난히 매미 소리도 크게 들리는 그야말로 의욕조차 기대할 수 없는 날이다. 방문한 고객의 집에는 어른도 없이 선아라는 아이 혼자 남아있다. (영화에서는 선아의 이름이 한 번도 불리지 않는다.) 밖의 날씨를 집안까지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후텁지근한 공기가 집 냄새와 함께 도연을 잠시 밀어낸다. 도연은 손부채질을 해가며 잠시 바깥공기에 얼굴을 내민 후에야 집안에 들어온다. 방안 물건들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고 컴퓨터는 설치조차 되지 않은 채 도연을 맞이한다.

    컴퓨터를 설치하는 도연에게 아이는 연신 질문을 던진다. 정작 질문은 선아가 하는데 오히려 돌아오는 도연의 질문에 선아가 답을 한다. 답하는 걸 듣고 보니 도연은 잠깐 선아를 바라보게 된다. 그의 표정에는 선아의 처지(아버지가 안 계실지 모른다. 엄마가 고등학교 때 아이를 낳았다)를 미루어 짐작이라도 한 듯 당황스러운 속마음이 드러나 있다. 7살 선아가 공감하기에는 아직 어리고 뭘 모르는 나이이다. 선아에게 도연은 그저 혼자 지루하게 있었던 참에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일 뿐이다.

    "아빠들은 원래 이런 거(컴퓨터 설치) 잘해요?"

    "7살이요"

    "(우리 엄마) 하나도 안 젊어요. 25살인데요"

    -선아의 대사 중에서-

    컴퓨터를 설치하는 도연과 그것을 바라보는 선아




    바쁜 청춘은 연애할 시간도 없다. 데이트 약속을 했는지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약속한 시간보다 좀 늦어질 것 같다고 말을 하는데 선아가 도연의 등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여자친구 이름을 어떻게 들었는지 전화기에 대고 "세리야 세리야 너 누구니?"라며 방해한다. 주말 약속에 애가 타는 여자친구를 달래 보려고 애꿎은 도연만 진땀이 난다. 방문한 집에 애가 있다며 미안하단 말로 통화를 일단락한다. 오늘 마지막 방문인 이 집을 빨리 탈출하려는 듯 장비를 챙기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인터넷 설치하는 도연을 내내 따라다니는 선아



    옥상 난간에 길게 늘어져 있는 전선들을 정리하는 도연을 따라 선아도 까치발로 간신히 난간에 걸친 전선을 이리저리 흔들어 본다. 이제 도연은 선아까지 돌봐야 하는 신세로 아이의 안전이 신경 쓰인다. "저리 가" 한마디에 멀찍이 떨어져 본다. 그래 봤자 옥상에 함께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둘은 만난 지 처음으로 각자 할 일을 한다. 도연은 인터넷 설치를 선아는 오히려 자신에게 익숙할지도 모르는 혼자 노는 일을. 무성한 옥상 화분들은 여름 바람에 한들한들한다. 선아도 화분에 물도 주었다가 이파리도 만지며, 화분들 사이로 한들한들 바삐 움직인다. 그러다 도연의 모습을 한번 쳐다보고, 도연도 선아가 잘 있는지 확인한다.

    다시 집으로 내려와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야 선아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방 쪽으로 몸을 돌려 불러 보지만 인기척이 없다. 일어나 찾으려는데 창문 바깥으로 선아가 보인다. 선아는 마당 화분 뒤에 쪼그려 앉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듯 보인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 도연에게 다시 들어가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더니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이다.

    인터넷 설치가 끝나도록 엄마가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부재중이다. 도연은 쪽지를 적어 TV에 붙이고 엄마 오면 전해 달라고 당부한다. 그런 도연을 선아는 가만 놔둘 리 없다. 집에 갈 채비도 하기 전에 현관문으로 달려나가 도연의 신발 속으로 자신의 발을 들여놓는다. 이제 정말 화를 내지 않으면 안 되겠는지 도연은 단호하고 엄하게 비키라고 말한다. 선아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는지 서러움에 복받쳐 울음을 터뜨린다. 도연은 집에 가야 하지만 선아는 가는 도연을 막아야 한다. 서로에게 일이 자꾸만 꼬여 간다. 설상가상 여자친구에게서 문자가 온다. 답을 할 수 없다.

    일 다 끝났어?

    -여자친구 세리가 보내온 문자 내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도연은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선아는 도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손가락으로 도연의 신발 끈을 비비 꼬면서 다른 한 손가락으로는 마우스를 클릭하며 인터넷 게임을 즐기고 있다. 어느 누가 방문한 고객의 집 꼬마 아이가 붙잡아 집에 못 간다는 말을 믿을까? 이제는 토요일에 일하는 것조차 맘에 안 드는 여자친구의 반응에 서운함을 느낀다. 자신의 미안함을 몰라주는 여자친구의 불만을 듣자니 지금까지 쌓아둔 짜증이 분출이라도 한 듯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리곤 자포자기해버린다.

    그럼 다른 남자 만나든가!

    -여자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도연의 대사 중에서-

    생각에 잠긴 도연



    이쯤 되면 엄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왜 아이를 혼자 두고 나갔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도연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식탁에 올려진 핸드폰을 발견한다. 애초에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그 옆에는 핸드백이 그대로 놓여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외출을 했다면 가지고 갔을 물건이다. 핸드백을 들여다보는데 지갑도 그대로 들어 있다. 그제야 선아에게 물어본다.

    엄마 가방이랑 핸드폰 여기 있는데 금방 오시는 거 아니야?

    -도연의 대사 중에서-

    선아는 대꾸 없이 게임만 하고 있다. 오히려 대화의 화제를 돌린다.

    아저씨! 아저씨도 이거 해봐요

    -선아의 대사 중에서-

    착하다고 해야 할지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도연은 선아의 지시대로 게임을 플레이한다. 그러다 짜장면까지 시켜주는 그야말로 시중 아닌 시중을 드는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아를 잘 구슬려야 집 밖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선아는 짜장면 먹을 생각에 기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이때다 싶었는지 도연은 짜장면 오면 같이 먹고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방이랑 핸드폰 있으니까 엄마가 금방 올 것 같다며 누가 봐도 이상한 정황을 7살 아이에게 설득이라며 말한다. 어쩌면 이런 이상하고 찜찜한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아는 도연의 순진함을 이용이라도 한 듯 이번에도 도연을 붙잡을 한마디를 한다. 그리고는 방에 드러누워버린다.

    아저씨 저 머리 아파요. 여기 만져봐요 열나죠?

    -선아의 대사 중에서-

    어찌 되었든 짜장면은 시켰으니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도연은 볼일을 보기 위해 부엌 옆에 있는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어찌 된 일인지 잠겨 있어 선아에게 물어보니 묵묵부답이다. 이전에 잠긴 문을 열어본 경험이 있었는지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문고리 옆 틈에 카드 집어넣고 그리 어렵지 않게 잠겨 있는 문을 풀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처음 집에 들어올 때 도연을 밀어냈던 그 집 냄새가 더 강렬하게 도연의 코끝을 찌른다. 도연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문밖으로 한번 돌려 코를 막고 조심스럽게 다시 화장실로 들어간다. 선아는 여전히 방에 누워있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소리로만 응시하고 있다. 재난 영화 속 영웅의 모습처럼 도연은 선아를 안고 집 밖을 나온다. 그동안 엄마의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 7살짜리 아이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이었다.




    여름 바람에 한들한들 거리던 이파리들은 비에 젖어 축 처져 있다. 마음속에 비가 내렸을 선아를 도연은 애써 벤치에 앉혀 놓고 애처롭게 바라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고 선아는 도연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도연은 이제껏 자신을 귀찮게 했던 선아의 행동들이 고맙고 그래서 더 미안하고 다행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왔을 것이다. 옆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짜장면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차갑게 식어 버린 짜장면




    '토요근무(2011)'의 복선에 대해

    보편적으로 단편영화감독들은 반전을 자주 활용한다. 짧은 시간에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남겨 주기 위한 이유이다. 반전이라는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선과 같은 원인 또는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우연으로 발생해버리면 관객들이 납득하기 어렵고 황당함을 느껴 버린다. 그러나 복선이 누가 봐도 티가 나게 두드러진다면 그 효과가 미비하다. 그러니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바로 이점이 모든 감독이 머리 아파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반전이 있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팁은 기대하지 않고 보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를 별로 기대하고 보지 않았다. 예고편이 재밌으면 본 감상에서 흥미가 떨어지 듯 단편영화도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편영화는 러닝타임이 길지 않으니 2~3번 본다 생각하고, 처음에는 멍 때리면서 보는 것을 추천하다.

    '토요근무(2011)'에서의 반전은 '엄마의 죽음'이다. 짧은 외출을 하고 돌아올 것 같던 엄마는 처음부터 화장실에 있었다. 이 반전을 본 나는 이상하지만 별생각 하지 않고 넘겼던 영화 장면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스치며, 마치 퍼즐이 완성되는 것처럼 되었다. 그 장면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연이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문을 열자마자 코를 막고 손으로 부채질하는 장면은 이 집의 공기가 바깥공기와 다르다
    는 것을 알게 해준다. 나중에 도연이 코를 막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장면과 연결된다.





    2. 선아의 행동 A
    선아는 도연을 만나는 순간부터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며 말을 붙인다. 처음에는 보통의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하는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도연이 인터넷 설치를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도연의 신발을 빼앗고 못 나가게 현관 을 막아 세우는 행동에서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과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해준다. 7살 선아는 자신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도연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3. 선아의 행동 B
    선아가 마당에 있는 화분 뒤에 쪼그려 숨어 있는 장면은 반전을 보고 다시 생각해 보니 선아가 화장실을 가지 못해
    마당에 볼일을 본 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종일 도연이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녔던 선아는 이때만큼은 도연이다가 오지 못해 게 애원한다.


    보통 감독들은 영화 중간지점에 영화의 흐름을 전환하는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를 염두에 둔다.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2019)'에서 주인 없는 집에서 기택의 가족들이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문광이 인터폰을 누르는 기괴한 장면이 그러하다. 이 장면 에서부터 영화 장르가 코믹드라마에서 스릴러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처럼 이야기가 급전하는 전개 방식으로 터닝포인트(Turning Point)를 설정하는 경우와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화적인 단서를 제공 할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로프(1948)'에서는 80분 동안 편집 없이 보여주는 롱테이크(Longtake)기법으로 촬영하였는데 감독은 영화 중반부에 이야기가 전환 되는 국면을 설정하기 위해 영화에서 유일한 컷(Cut) 장면을 보여준다. '토요근무(2011)'에서 위 장면은 터닝포인트(TurtningPoint)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 결말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화장실과 관련된 단서가 처음 제시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전개 되는 이야기는 서서히 결말로 가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4. 선아의 행동 C
    도연이 화장실 문을 열기 전에 선아에게 화장실을 쓰겠다고 말하지만 선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이미 반전을 예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결말에 가까운 복선이다.

    도연 : 나 화장실 좀 쓸게

    선아: .......

    도연 : (잠겨있는 문고리를 돌려기며) 부엌 옆에 있는 거 화장실 아니야?

    -도연의 대사 중에서-

    '토요근무(2011)'에 대한 나의 생각
    이 영화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우리 시대의 아픈 청춘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있다. 이 영화가 내 기억 속에 계속 남은 이유는 재미있게 보아서가 아니라 선아와 선아 엄마, 도연과 같은 사람들이 '후텁지근한 공기'를 마시며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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