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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정유미의 데뷔작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Film/pick film 2020. 10. 16. 13:37

    배우 정유미의 데뷔작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WARING

    이 글은 본 영화의 구체적인 줄거리와

    리뷰어의 개인적인 분석까지 포함하고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기본정보

    감독 : 김종관

    출연 : 정유미(선아), 이정민(선배)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러닝타임 : 6분

    수상내역 : 3회 제주영화제(심사위원특별상)

    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심사위원특별상)

    5회 레스페스트 디지털영화제(관객상, 페스티벌 초이스 어워드)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tvN에서 방영 중인 '여름방학'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나는 출연진으로 나오는 정유미에게 눈을 한참동안 떼지 못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집에서 입을 것 같은 편안한 복장과 얼굴은 기본 메이크업 정도로만 되어 있는 정유미의 모습에도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야말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라는 표현에 걸맞게 수수한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러다 문득 2005년도에 봤던 그녀의 데뷔작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이 생각이 났다. 그해 한창 영화 공부에 매료되었던 나는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속 이름 모를 여배우를 보고 가슴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낡은 서랍 속 추억 사진을 찾아 뒤지는 것처럼 오래된 외장하드에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은 제목에서처럼 주인공 선아가(정유미) 선배에게 폴라로이드를 빌리면서 작동법에 대해 듣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 구조이다. 하지만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감정선이 보이면서 한층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 솔직히 영화 초짜였던 나는 당시에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이해하지 못했다. 장면마다 전해주는 의미를 캐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인물이 어떤 심리 상태를 가졌는지 파악하려면 인물의 행동, 언어, 화면 안에 담긴 이미지들의 의미(미장센) 등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상 언어로 보는 눈이 생기는 순간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히 '선배가 후배에게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아닌 '폴라로이드를 핑계 삼아 좋아하는 선배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찾고 있는 여학생의 이야기'로 변화하게 된다.

      먼저 선아의 행동을 따라 가보자. 처음 그녀가 등장하는 건 얼름잔을 들고 있는 손이다. 다 마셔버리고 얼음만 남은 유리컵을 조심스럽게 만지작만지작 한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라는 듯하다. 그러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무언가 발견이라도 한 듯 만지고 있던 유리잔을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시선이 응시한 그곳으로 간다. 조심스럽고 찬찬한 그녀의 행동은 신중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의 조심스러운 행동은 이 공간이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낯선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치 초대받은 손님이 집주인 없이 홀로 어색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책장에서 발견한 폴라로이드 사진 앞으로 고개를 내민다. 오래 되어 보이는 사진 속에는 남여가 있는데 남자가 사진기   쪽으로 다가가다 순간적으로 찍혀 상이 맺힌 모습이다. 그래서 얼굴이 잘려있다. 사진을 한참 보고 있는데 선배 목소리가 선아 옆에서 들려 온다. 선아는 인사 한마디 건네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며 눈은 선배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다. 심지어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선아의 표정은 뭔가 불안해 보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선배의 물음에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선배 : 필름은 샀니?

    선아 : 네...

    선배 : 필름 비싸지

    선아 : 네...

    사실 카메라는 얼마 안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지

    선아 : (고개를 끄덕인다.)

    선배 : 아 참! 그거 한 장씩 찍어주고 얼마 받는다 했지?

    선아 : 네 ...

    선배 : 응? 아 이 사진 찍어주고 얼마씩 받냐고

    선아 :(잠시 생각하며) 삼천 원이요.

    -선아와 선배의 대사 중에서-  

      위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선아는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일을 위해 선배에게 폴라로이드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한 듯하다. 그러나 정작 그 일에 관해 묻는 선배의 질문에 꼬리를 밟힌다. 선아는 선배의 질문에 일관되게 "네"라며 대답하다 "아 참! 그거 한 장씩 찍어주고 얼마 받는다 했지?"라는 질문에도 영혼 없이 "네"라고 답을 한다. 관객은 그녀의 미묘한 표정과 말투에서 수상함을 느낄 것이다. 정말 폴라로이드를 빌리러 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하지만 이내 신중하며 능청스러운 말투로 "삼천 원이요."라고 대답하면서 이 상황을 잘 넘겨버린다. "삼천 원이요."라고 하는 대사에서 당황했으나 당황하지 않고, 적당히 능청스러움을 표현한 정유미의 연기에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선아는 화제를 돌리려고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물어본다. 이때 처음으로 선배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본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선배가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설명하기 위해 폴라로이드를 조작하면서 시선이 그곳에 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고민이 있는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보이고 애꿎은 손만 만지작만지작 한다. 전혀 선배가 설명하는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아 보이는 모양새이다.

     

     

     

     

     

     

      설명을 이어 가던 선배가 "네가 해봐" 하며 폴라로이드를 넘겨줬지만 역시나 전혀 다루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조심히 다루라는 선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작 미숙으로 필름 하나가 나와 툭 떨어져 버린다. 애초에 폴라로이드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행동이다. 이쯤 되면 관객은 선아의 표정, 행동, 말투에서 선배에게 하려던 말이 있었을 거라는 것과 그것이 고백 비슷한 말일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용기 있게 못하고 좋아하는 선배 앞에서 실수만 반복하니 결국 애꿎은 입술만 깨문다. 폴라로이드를 들고 있던 손은 힘없이 서서히 축 늘어진다.

     

     

      이처럼 시나리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몸짓이나 행동을 통해 숨겨져 있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영상기법을 '셔레이드(charade)'라고 한다. ​셔레이드를 잘 쓰면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인상으로 표현될 수 있고, 인간의 심리를 깊이 있게 묘사할 수 았기 때문에 영상 표현에 중요하다.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에서는 '셔레이드(charade)'로 모든 이야기를 풀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촬영기법을 살펴보자. 당시만 하더라도 클로즈업으로만 촬영된 영상은 보기 드물었다. 왜냐하면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이즈의 숏(shot)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클로즈업은 상반신이 화면에 꽉 차게 촬영하는 숏(shot)인데 이렇게 되면 주변 환경이라든지 상황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전달하는 것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하지만 김종관 감독은 바로 이러한 점을 잘 활용해서 주인공 선아(정유미)의 1인칭 시점을 따라갈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선아의 수줍은 마음을 표현한 시점이라서 그런지 화면에는 선배의 얼굴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엔딩크레딧으로 활용된 장면에서 조작 미숙으로 촬영된 선배의 모습이 찍힌 사진에서 조차 그러하다. 수줍어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선아(정유미)의 시점이 실수로 촬영한 사진에도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선아의 첫 사진과 선배가 5살 때 처음 찍어 본 사진이 묘하게 겹친다.

     

     

     

     

      한편 카메라를 고정하지 않고 들고 찍는 핸드헬드(hand held)기법은 이 영화를 더욱 사실감 있게 표현한 것 같다. 카메라를 고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예상하듯 고정된 화면에서 보이는 안정된 화면이 아닌 미세한 떨림이 지속된 화면을 보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 화면의 떨림은 카메라 감독의 몸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촬영감독이 뷰파인더(view finder)-사진기에서, 촬영 범위나 구도, 초점 조정의 상태 따위를 보기 위하여 눈으로 들여다보는 부분- 를 통해 보고 느끼는 영화속 생생한 현장을 현실감 있게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화면에서 보이는 미세한 떨림이 마치 관객도 그 현장에 있는 선아 혹은 선배의 눈을 빌린 것 처럼 감정이입 하는 생동감을 느끼게 된다.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의 대한 나의 생각

      이 영화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아무것도 안 들리고, 실수투성이가 되며, 입술도 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감정 잘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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